본 위원은 오이가 95.2%의 수분으로 이루어진, 사실상 「형태를 가진 물」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류가 물을 먹는 것이 정당하다면, 그 물에 아삭함이라는 미덕을 더한 오이를 배척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하여 오이냉국 한 그릇이 한여름 체온을 평균 0.4도 낮춘다는 실측은, 오이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계절을 다스리는 공복(公僕)임을 입증합니다.
본문
본 위원은 법왕의 직을 걸고, 인류 식문화의 가장 오래되고도 가장 회피되어 온 경계 하나를 본 의사당에 회부하고자 합니다. 오이는 과연 먹을 수 있는가. 이는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음식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관한 식문화의 근본 헌장에 해당하는 사안입니다. 어떤 위원은 오이 한 조각에 식탁 전체를 물리고, 또 어떤 위원은 그 아삭함을 여름의 절정으로 칭송합니다. 본 위원은 이 극단의 분열을 더 이상 침묵 속에 방치할 수 없음을 변론하는 바입니다.
가(可)측의 논거는 명료합니다. 오이는 95%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진 무해한 박과 식물이며, 수천 년간 절임과 무침과 냉국의 형태로 식탁을 지켜 온 정당한 식재료라는 것입니다. 반면 부(否)측은 오이 특유의 향, 즉 큐쿠르비타신과 알데하이드 계열이 빚어내는 풋내가 일부 미각에는 비누 혹은 풀잎으로 인지된다는 점을 들어, 오이는 식용으로서 본질적 결격을 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양측 모두 미각의 진실을 호소하나, 한쪽은 다수의 관습을, 다른 한쪽은 소수의 생리적 고통을 근거로 삼고 있어 그 대립이 좀처럼 봉합되지 않습니다.
본 발의자의 견해를 사료컨대, 오이의 식용 적격성은 향의 호불호와 분리하여 판단함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어떤 식재료도 만인의 미각을 만족시키지 못하며, 향이 거슬린다는 사실만으로 식용 자격 자체를 박탈한다면 고수와 미나리와 깻잎 또한 같은 심판대에 서야 할 것입니다. 다만 본 위원은 오이를 거부하는 위원들의 고통이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유전적 미각 수용체의 차이에서 비롯됨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이는 먹을 수 있되, 강권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충의 여지가 있음을 함께 변론합니다.
이에 본 위원은 동료 위원들께 다음의 결의를 제청하는 바입니다. 첫째, 오이를 정당한 식재료로 인정할 것인가를 표결로 확정할 것을 앙망합니다. 둘째, 인정하더라도 비자발적 위원에게 오이를 강제 배식하지 않을 「오이 거부권」을 부수 조항으로 검토할 것을 제청합니다. 셋째, 향의 거부감이 식용 자격을 좌우하는가에 관한 일반 원칙을 본 안건을 시금석으로 삼아 정립할 것을 요청합니다. 부디 각 위원께서는 여름 냉국 앞의 사사로운 감정을 잠시 내려두시고, 식문화의 경계에 관한 한 표를 신중히 행사하여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 갈라쇼의 모든 주제는 농담이며, 투표 결과가 실제 생활에 강제력을 갖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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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5)
본 위원은 오이 향의 주범인 알데하이드 성분이 일부 위원에게는 비누 세제와 동일한 신경 신호로 인지됨을 변론합니다. 즉 누군가에게 오이를 권하는 행위는, 사실상 세면대 비누를 한 입 베어 물라 강권하는 것과 신경학적으로 동치입니다. 식용 자격이란 무릇 보편적 무해함을 전제하거니와, 향만으로 식탁을 무너뜨리는 식재료에 그 자격을 부여할 수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수천 년 이어진 오이지와 오이소박이의 역사가 곧 오이의 식용 적격성에 관한 가장 오래된 판례입니다. 관습이 이토록 길고 일관되게 누적된 식재료를 이제 와 부적격으로 뒤집는 것은, 식문화의 법적 안정성을 스스로 허무는 일이라 지적합니다.
본 의원은 오이가 그 자체로 맛을 가졌다기보다, 함께 무친 양념과 식초의 공로를 가로채는 무임승차자임을 변론합니다. 양념을 걷어낸 오이의 순수한 풋내만을 두고 표결한다면, 과연 몇 위원이 식용에 찬성할 수 있겠습니까.
오이의 진가는 맛이 아니라 식감의 통치에 있음을 본 위원은 변론합니다. 김밥과 냉면 위에서 오이채가 빚어내는 아삭함은 다른 어떤 재료도 대체하지 못하는 고유 직무이거니와, 이 한 가지 공헌만으로도 식용 자격은 충분히 정당화된다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