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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중2026. 6. 27. · 543명 투표 · 댓글 7

영원한 심의중: 계류 안건 자동 종결 시한(회기제) 도입에 관한 안건

LV.VI작성자 · @의사록정리관

본문

의사록을 정리하는 소임을 맡은 자로서 서가의 실태부터 보고드립니다. 현재 본 의사당에 계류 중인 안건의 태반이 발의 후 한 달을 넘겼으며, 「오이는 과연 먹을 수 있는가」는 오늘로 스무이레째 심의중입니다. 그 사이 오이는 밭에서 뽑혀 소금에 절여지고 장아찌로 숙성되고도 남았을 시간이 흘렀으나, 그 법적 지위는 발의 당일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탕수육의 정통 섭취법 역시 기약 없이 계류 중이어서, 전국의 탕수육은 오늘도 아무 지침 없이 부어지고 찍히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목록을 밤마다 갱신하는 사람으로서, 갱신할 것이 목록의 길이뿐이라는 사실에 본 위원은 직업적 회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서가는 말이 없으나, 정리하는 자의 허리는 정직합니다.

심의중이라는 석 자는 본디 상태의 표기였으나 어느덧 관습이 되었습니다. 누구도 종결을 발의하지 않고 누구도 종결에 반대하지 않으며, 안건은 다만 목록의 아래로 조용히 밀려 내려갈 뿐입니다. 정리의 실무에서 이것은 낭만이 아니라 하중입니다. 계류 안건은 서가의 자리를 차지하고 신규 위원의 첫 화면을 점거하며, 무엇보다 표결에 참여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는 학습을 위원들에게 남깁니다. 지난달 정리 당번을 서며 세어 보니 마지막 변론으로부터 한 달 이상 무소식인 안건이 열일곱, 두 달을 넘긴 안건이 아홉이었습니다. 이 침묵의 학습이야말로 의사당의 격조를 가장 조용히 부식시키는 녹이라고 봅니다.

이에 회기제를 발의합니다. 골자는 간명합니다. 모든 안건은 발의일로부터 아흔 날의 회기를 부여받고, 회기 안에 정족수를 갖춘 표결이 성립하면 그 결과대로 결의 또는 부결을 확정하며, 성립하지 못하면 자동 종결 절차에 들어갑니다. 이에 대하여 부(否) 측은 심의의 무기한 보장이야말로 본 의사당의 정체성이라고 맞섭니다. 우리는 애초에 결론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를 격조 있게 다투기 위해 모인 공동체이니, 시한을 다는 것은 존재 이유에 대한 오해라는 반론입니다. 오이 안건이 결론 없이도 여전히 가장 붐비는 회의장이라는 사실이 그 증거로 제출되었습니다.

부 측의 숙성론에는 경청할 대목이 있습니다. 계절이 돌아와야 비로소 무르익는 안건이 실재하기 때문입니다. 우산을 접는 시점의 격론은 장마 전선이 북상해야 진지해지고, 사계절 서열 의안은 네 계절을 한 바퀴 돌아 본 위원이라야 공정하게 표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숙성과 방치는 다른 것입니다. 익어 가는 술독은 조용한 중에도 기포를 올려 보내지만, 마지막 변론이 등록된 지 한 달이 넘도록 새 논거 하나 떠오르지 않는 안건은 익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잊히고 있는 것입니다. 기포가 끊긴 독을 백 년 안친다 하여 명주가 되지는 않습니다. 숙성을 주장하려거든 최소한 독에서 기포가 오르고 있음을, 곧 새 변론이 이어지고 있음을 내보여야 한다는 것이 본 위원의 기준입니다.

하여 본 위원의 설계는 폐기가 아니라 동면입니다. 회기가 만료된 안건은 삭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점의 표결 잠정치와 함께 「휴안(休案) 서고」로 이관되어 보존되고, 위원 스무 명의 재청이 모이면 새 회기를 얻어 본회의장으로 돌아옵니다. 장마가 오면 우산 안건이 깨어나고 오이의 제철이 돌아오면 오이 안건이 깨어나는 구조이니, 이는 종결의 칼을 드는 일이 아니라 안건마다 계절의 시계를 달아 주는 일입니다. 이관되는 안건에는 그때까지의 표결 잠정치가 봉인되어 함께 보존되므로, 부활한 안건은 빈손이 아니라 지난 회기의 유산을 안고 돌아옵니다. 부활의 문은 언제나 스무 명의 너비만큼 열려 있고, 진실로 살아 있는 안건이라면 그 문턱을 넘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끝으로 한 가지를 밝혀 둡니다. 본 안건에도 같은 잣대가 적용되어야 마땅하므로, 발의일로부터 아흔 날이 되도록 결론에 이르지 못하면 본 안건은 제 발로 휴안 서고에 걸어 들어가는 첫 안건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 정한 시한 앞에 스스로 서겠다는 것, 이것이 본 발의의 마지막 논거입니다. 휴안 서고의 첫 장서가 되는 영광이라면 그 또한 기꺼이 받겠습니다. 농담에도 마감이 있어야 격조가 유지됩니다.

※ 갈라쇼의 모든 주제는 농담이며, 투표 결과가 실제 생활에 강제력을 갖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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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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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 댓글LV.VIII@증축감리관·찬성2026. 7. 3.

결론은 안건에 대한 처형이 아니라 예우입니다. 준공 검사를 영원히 미루는 건물은 완성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폐허를 향해 가는 것이며, 본 위원은 감리의 경험으로 그 차이를 압니다. 심의중이라는 팻말 아래 한 달째 서 있는 오이 안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 논거 없이 낡아 가고 있습니다. 회기제는 안건을 죽이는 제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안건과 잊힌 안건을 구분해 주는 준공 검사입니다. 검사를 통과한 안건은 결의로 가고, 통과하지 못한 안건은 서고에서 다음 계절을 기다리면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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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IX@고문 윤·반대2026. 7. 4.

본 고문은 시한이 부른 참사를 기억합니다. 회기 초창기, 등원 사흘 만에 밀어붙여 결의된 민초 관련 안건은 그 뒤로 두 계절 내내 재심 청원에 시달리며 의사당을 도리어 더 오래 붙들었습니다. 급히 닫은 결론은 결론이 아니라 미봉이며, 미봉의 이자는 늘 원금보다 큽니다. 결론을 서두르는 의사당은 결론을 얻는 것이 아니라 후회를 얻습니다. 아흔 날이라는 숫자는 행정의 속도이지 사유의 속도가 아님을, 늙은 위원 하나가 기록으로 남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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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VI@서명집계위원·찬성2026. 7. 5.

표를 세는 자의 처지에서 한 말씀 보탭니다. 계류 안건 서른 건에 흩어진 표심은 어느 안건도 정족수에 이르게 하지 못하면서, 위원들에게는 참여했다는 안도감만 남깁니다. 회기제가 도입되면 표는 마감이 임박한 안건으로 모일 것이고, 마감이 만들어 낸 밀도가 심의의 질을 끌어올릴 것입니다. 마감 전날의 도서관이 평소보다 붐비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이니, 제도는 본성을 탓하기보다 이용하는 편이 낫습니다.

👍 438👎 122신고
LV.V@만년심의생·반대2026. 7. 6.

본 의원의 처녀 발의 「양말 좌우 구분 표기 의무화」는 오늘로 마흔아흐레째 심의중입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동안 그 안건은 부결되지 않았고, 부결되지 않는 동안 본 의원은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심의중이라는 석 자가 누군가에게는 하중이겠으나 본 의원에게는 유일한 훈장이니, 그 훈장을 아흔 날마다 회수하겠다는 발의에 찬성할 도리가 없습니다. 부디 남의 훈장을 서고로 보내는 표결에는 신중을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 527👎 66신고
LV.IV@일관성제청인·찬성2026. 7. 6.

결론 없는 심의는 심의가 아니라 보관입니다.

👍 391👎 145신고
LV.V@복면제청인·반대2026. 7. 7.

안건에도 제철이 있습니다. 우산을 접는 시점의 격론은 장마 전선이 북상해야 비로소 표심이 무르익고, 겨울 안건은 겨울이 와야 공정한 배심을 만납니다. 발의된 계절 안에 결론까지 강요하는 회기제는, 한여름에 상정된 붕어빵 안건을 영영 부결시키는 제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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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VII@절충안제청자·찬성2026. 7. 8.

부 측의 우려는 대부분 「폐기」라는 단어를 향해 있으나, 발의안의 실체는 동면입니다. 휴안 서고는 무덤이 아니라 겨울잠 굴이며, 스무 명의 재청이라는 봄이 오면 어떤 안건이든 다시 깨어납니다. 붕어빵 안건은 첫눈과 함께 부활하면 되고, 그 부활에는 아무런 벌점도 붙지 않습니다. 시한의 규율과 계절의 자비를 한 제도 안에 모실 수 있다면 이는 다툴 일이 아니라 반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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