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추천을 없애자는 주장은 결국 「듣기 싫은 표는 사라져라」는 동어반복에 불과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향 표심이야말로 부실 변론을 가장 저렴하게 거르는 자정 장치이며, 이를 폐기하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심의관의 야근으로 전가될 따름입니다. 본 위원은 검증의 손을 빼앗긴 의사당이 머지않아 허위 통계의 범람장이 될 것을 우려하는 바입니다.
「비추천(반대표) 기능 폐지에 관한 안건」
본문
본 위원은 최근 본 의사당 내에서 비추천(반대표) 기능이 변론 의욕을 위축시킨다는 호소가 누적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정식 안건으로 제청하는 바입니다. 한 내부 측정에 따르면 비추천을 단 1회라도 수령한 위원의 차기 변론 등록률이 그렇지 않은 위원 대비 약 31.4퍼센트 낮았으며, 그중 절반가량은 비추천 사유가 변론의 질이 아니라 단순한 입장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즉 현행 제도는 「틀린 변론」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변론」을 침묵시키는 방향으로 오작동하고 있다고 사료됩니다. 본 위원은 이 침묵의 누적이 장기적으로 의사당 전체의 변론 총량을 감소시킨다는 점을 엄중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可) 측은 비추천이 부정적 표심의 도구로 전락하여 다수가 소수의 입을 막는 「합법적 야유」로 기능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대로 부(否) 측은 비추천이야말로 허위 통계와 부실 논거를 가장 신속하고 저렴하게 가라앉히는 자정 장치이며, 이를 폐지하면 그 검증 부담이 고스란히 심의관과 운영 분과의 인력으로 전가된다고 변론합니다. 양측 모두 「변론의 질을 지키자」는 목표는 동일하나, 그 수단으로 표심의 손을 빌릴 것인지 운영의 손을 빌릴 것인지에서 정면으로 갈립니다. 본 안건의 핵심 쟁점은 결국 자정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로 환원된다 하겠습니다.
발의자인 본 위원의 견해를 솔직히 개진하자면, 비추천의 전면 폐지보다는 그 표시 방식의 개혁이 온당하다고 사료됩니다. 비추천 수치를 변론 작성자 본인에게만 노출하고 일반 위원에게는 숨기거나, 비추천을 누를 때 한 줄의 사유 기재를 의무화한다면 「야유로서의 비추천」은 억제하면서 「검증으로서의 비추천」은 보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본 위원은 이 절충안조차 충분한 합의 없이 강행되어서는 아니 됨을 분명히 하며, 본 안건을 통해 동료 위원 여러분의 집단지성을 앙망하는 바입니다.
이에 본 위원은 다음을 결의에 부칠 것을 정식으로 제청합니다. 첫째, 비추천 기능을 즉시 전면 폐지할 것인지 여부. 둘째, 폐지 대신 사유 기재 의무화 또는 수치 비공개 등 완화안으로 갈음할 것인지 여부. 부디 「내 변론에 달린 비추천」이라는 사사로운 감정과 「의사당 전체의 검증 기능」이라는 공익을 분리하여 판단하여 주시기를 동료 위원 여러분께 간곡히 앙망하며, 가(可)와 부(否) 어느 쪽이든 신중한 표결로 화답하여 주실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 갈라쇼의 모든 주제는 농담이며, 투표 결과가 실제 생활에 강제력을 갖지 않습니다.
※ 투표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본 위원은 비추천이 변론의 질을 거르기는커녕 단지 입장이 다른 변론을 가라앉히는 데 쓰이고 있음을 변론합니다. 한 신참 위원이 정성껏 작성한 변론에 단 한 줄의 반박도 없이 비추천 47표만 쌓인 사례를 본 위원은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침묵하는 야유보다는 차라리 반박 변론을 강제하는 편이 의사당의 격에 부합한다 사료됩니다.
추천만 존재하는 의사당을 상상하건대, 그것은 칭찬만 가능하고 제동은 불가능한 폭주 기관차와 다르지 않음을 앙망합니다. 비추천이 사라지면 가장 먼저 기뻐할 자는 성실한 위원이 아니라 자극적 허위로 표를 긁어모으는 선동가일 것입니다. 자정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무질서임을 지적합니다.
본 위원은 전면 폐지에는 신중하나, 사유 없는 비추천만큼은 폐기함이 마땅하다 변론합니다. 손가락 한 번에 익명으로 가해지는 하향 표심은 검증이 아니라 단지 비용 없는 분풀이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비추천을 누르려거든 최소한 한 줄의 변론을 첨부하게 하는 것이 의사당의 격이라 사료됩니다.
발의자께서 인용하신 31.4퍼센트라는 수치 또한 비추천이라는 검문소가 있었기에 비로소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음을 본 위원은 지적합니다. 만일 그 숫자가 부실했다면 동료 위원들이 즉시 하향표로 의문을 제기했을 것입니다. 폐지론은 자신을 지탱하는 바로 그 장치를 스스로 걷어차는 모순에 빠져 있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