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의 즉시 처리를 관철시킨 자로서 묻습니다. 하루를 다 쓴 몸과 식사를 마친 그릇이 무엇이 다릅니까. 그릇은 미루면 굳고, 몸은 미루면 이불에 스밉니다. 하루치의 먼지와 피로를 두른 채 침구에 드는 것은 싱크대에 그릇을 쌓아 두고 잠드는 것과 정확히 같은 구조의 나태이며, 다만 그 결과가 눈에 덜 보일 뿐입니다. 몸은 그날의 마지막 설거지입니다. 즉시 처리하십시오.
본문
인류는 매일 최소 한 차례, 물의 시각을 결정해야 합니다. 하루를 마친 몸을 씻고 잠자리에 들 것인가, 잠에서 깬 몸을 씻고 세상에 나설 것인가. 본 원로위원은 일찍이 휴일 알람의 부당함을 부르짖다 다수의견의 벽 앞에 선 전력이 있으나, 오늘은 그보다 오래되고 그보다 은밀한 전선을 의사당에 보고하고자 합니다. 저녁 샤워파와 아침 샤워파는 같은 욕실을 쓰면서도 서로를 이해한 적이 없으며, 다만 상대가 씻는 시각에 잠들어 있었기에 충돌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유의할 것은 본 안건에 중립지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위원은 오늘 아침 혹은 어젯밤에 이미 몸으로 한 표를 행사한 채 등원하였으며, 기권을 주장하는 자는 양측 모두로부터 씻지 않은 자로 의심받게 될 것입니다.
가(可), 곧 저녁 샤워 진영의 요체는 침구의 성역화에 있습니다. 하루 동안 몸에 내려앉은 도시의 먼지와 지하철 손잡이의 기억과 사무실의 공기를 그대로 이불 속에 반입하는 것은, 침대를 외투 주머니와 동일한 위생 등급으로 격하시키는 처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수면 과학이 가세합니다. 취침 한두 시간 전의 온수 샤워가 심부 체온의 하강 곡선을 유도하여 잠드는 시각을 앞당긴다는 실측은, 저녁 샤워가 단순한 세척이 아니라 수면 의식의 개막임을 뒷받침합니다. 저녁파는 샤워를 하루의 폐회식이라 부릅니다. 온수가 어깨에 닿는 순간 그날의 회의록이 마감되고, 침대에는 오직 산회(散會)한 인간만이 입장할 자격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부(否), 곧 아침 샤워 진영은 각성과 예절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진영에 따르면 아침 샤워는 인류가 고안한 가장 확실한 알람이며, 어떠한 자명종도 정수리에 떨어지는 물줄기의 각성력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나아가 이들은 밤사이 인체가 배출하는 땀과, 베개가 밤새 성실히 조각해 놓은 머리 모양을 지적하며, 어제 씻은 몸이란 결국 어제의 청결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씻지 않은 채 집을 나서는 것은 타인의 후각에 어제를 강요하는 일이라는 다소 공격적인 표어도 이 진영의 작품입니다. 이들은 또한 아침 샤워를 출근이라는 전장에 나서기 전의 군장 점검에 비유하며, 전날 밤의 청결로 오늘 하루를 버티려는 것은 어제 닦은 군화로 오늘의 열병식에 서는 것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심의에 앞서 제3의 세력들이 속속 등단하였음을 함께 보고합니다. 아침과 저녁에 한 차례씩 씻는 이회파(二回派)는 양 진영의 논거를 모두 수용하는 대신 수도 요금과 피부 유분의 이중 손실을 감수하고 있으며, 머리만 아침에 감고 몸은 저녁에 씻는 분리주의파는 정교하되 욕실 체류 시간이 도합 두 배로 늘어나는 역설에 봉착해 있습니다. 급기야 운동한 날에만 씻는다는 조건부파의 등원에 이르러서는, 심의가 아니라 계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제기된 바 있습니다. 이회파는 스스로를 유일한 완전체라 자부하나 양 진영 모두로부터 수자원의 공적(公敵)으로 지목되어 협공을 받는 처지이며, 분리주의파는 두 진영 사이를 오가며 양쪽의 표를 잠식하고 있어 오히려 정국의 변수로 부상하였습니다. 본 원로위원은 이들 군소 정파의 난립이야말로 이 안건이 방치되어 온 세월의 길이를 증명한다고 봅니다.
발의자의 소신을 밝히자면, 본 원로위원은 저녁 샤워에 표를 던집니다. 침대는 하루 중 인간이 가장 무방비한 여덟 시간을 의탁하는 장소이며, 그 성역에 하루치의 도시를 끌고 들어가는 것을 위생이라 부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각성이 필요하다는 아침파의 항변에 대하여는 냉수 세수와 창문 개방이라는 대체재가 이미 존재함을 지적하며, 무엇보다 저녁에 씻어 둔 자만이 아침의 오 분을 더 잘 수 있음을 원로의 이름으로 증언합니다. 늦잠의 대의에 비추어 보더라도 아침의 절차는 짧을수록 옳으니,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시간은 기상 직후의 오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열대야가 새벽까지 몸을 데우는 한여름에 한하여, 아침의 보충 샤워를 예외로 인정할 용의가 있음을 밝혀 둡니다.
끝으로 양 진영이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강령 하나를 제안합니다. 저녁이든 아침이든, 씻었노라 말하고 씻지 아니한 자만은 양측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자는 것입니다. 시각의 차이는 취향이로되 세척의 생략은 기만이며, 이 의사당의 어느 분과도 기만 위에서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샤워 여부를 판별할 기술적 수단이 없는 이상 이 강령은 오직 각자의 양심과 주변인의 후각에 의탁할 수밖에 없으나, 본디 문명이란 그 두 가지에 의탁하여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본 원로위원은 오늘도 밤 열한 시의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로 이 발의문을 퇴고하였음을, 기록의 정확성을 위하여 부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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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의 물줄기를 경험해 보지 못한 위원들께 삼가 고합니다. 아침 샤워는 세척이 아니라 점화(點火)이며, 밤사이 식은 몸의 화로에 다시 불을 넣는 절차입니다. 저녁에 씻은 청결은 여덟 시간의 뒤척임 속에서 이미 소진되었으니, 아침의 물만이 그날의 것입니다. 어제의 샤워로 오늘을 살겠다는 것은 어제의 밥으로 오늘의 허기를 달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덜 깬 정신으로 내리는 오전의 결재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는, 굳이 실측을 첨부하지 않겠습니다.
수면 부채의 회계를 맡아 온 처지에서 셈을 보태자면, 온수 샤워 후 심부 체온이 하강하는 국면에 잠자리에 들 경우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유의하게 단축된다는 실측이 있습니다. 저녁 샤워는 비용이 아니라 수면의 원리금을 앞당겨 회수하는 투자입니다. 아침파가 샤워로 잠을 깨는 동안, 저녁파는 샤워로 잠을 법니다. 잠들지 못하고 천장을 바라보는 삼십 분이야말로 어느 가계부에도 잡히지 않는 최대의 적자 항목임을 첨언합니다.
이불의 통풍을 변론했던 자로서 저녁파의 침구 성역론에 반증을 제출합니다. 성인은 밤사이 컵 한 잔 분량의 땀을 침구에 헌납하는바, 저녁에 아무리 정결히 씻고 누워도 아침의 침대는 이미 어젯밤의 기록으로 축축합니다. 침구의 위생은 샤워의 시각이 아니라 세탁의 주기가 결정합니다. 저녁파는 원인을 씻었다고 믿지만, 실은 결과 위에서 자고 있는 것입니다. 정녕 침구가 걱정이라면 샤워의 시각이 아니라 이불을 널어 말릴 발코니의 지분을 다투는 것이 순서입니다.
젖은 머리로 만원 지하철에 오르는 아침파의 뒷모습이 이 논쟁의 결론입니다. 드라이어의 소음은 각성의 팡파르가 아니라 지각의 전주곡입니다.
아침 여덟 시의 만원 객차에서 옆 승객의 어제가 코끝으로 전해질 때가 있습니다. 저녁의 샤워는 본인을 위한 것이나 아침의 샤워는 만인을 위한 것임을, 노선의 이름으로 증언합니다.